책의 향기/시가 머무는 자리

너울너울 2010. 12. 28. 20:40

 

 

                                                                사진 출처 : http://kr.image.yahoo.com/envt712

 

 

 뿔

                                      -신경림-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

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쟁기를 끌면서도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

콩깎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

큰 눈을 꿈벅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두어 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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