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와 볼라벤
이번에는 언니네서 한 3일 머물며 노력봉사하려 했는데 태풍의 영향으로 일찍 올라왔다. 고추가 얼마나 색이 예쁘고 주렁주렁 매달렸는지 금새 한 자루가 채워진다. 벌레 먹어 버릴 고추도 많았지만 워낙 빠알간 고추가 많기에 ' 벌레가 먹고 내가 먹고' 하는 시를 떠올리며 태풍의 영향으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더위를 날리며 부지런히 고추를 땄다. 집에 와서도 내내 언니네 고추 하우스가 걱정되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전화했더니 별일 없다 하여 안심했는데..... 점심에 전화했더니 하우스가 다 날아 갔단다. 에고 어쩌냐 비 맞은 고추는 이제 끝인데 눈 앞에 빠알간 고추들이 어른거린다. 3년 전에도 구기자 하우스가 날아 갔는데 이번엔 고추하우스까지 모두 세 동이 날아가 버렸다니. 주렁주렁 매달린 빠알간 고추들 시간이 없어 반도 따지 못했는데 내 마음이 이럴 땐 그동안 땀흘려 가꿔온 언니 맘은 어떨까? 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이번 토요일에 가서 언니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며.
볼라벤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과수원이 뉴스에 나오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을 출하를 일주일 앞두고 다 떨어져 버렸으니........ 과일을 출하하여 1년을 살아야 하는데 이들의 허탈한 모습에 언니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고춧잎 밑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빠알간 고추들
앉아서 보면 한 나무에 주렁주렁 이렇게도 예쁘게 빨갛고 윤이 나는 고추들이었는데 아직도 익어가고 있던 셀 수 없이 많은 고추들이 매달려 있었는데
고추가 문제가 아니라 오늘 밤 딴 데서 자야할까 보다 하는 언니 태풍이 지나간 자리가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 하다니
신문을 붙인 베란다 유리창이 무섭게 흔들거리며 지금도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 12. 8.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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